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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민이 형한테 왜 그랬어?'
철기둥 김민재도 무너뜨린 '언팔' 후폭풍
축구 대표팀 김민재(오른쪽)가 손흥민의 SNS 계정을 언팔(팔로 취소)한 이후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언팔이 곧 관계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표팀에 내분이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 김민재는 다시 손흥민을 팔로했다.
/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뉴스1, 그래픽=송윤혜
"최수종씨를 왜 언팔하신 건가요?"
배우 이승연이 진행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한 팬이 기습 질문을 던졌다. '언팔'은 누군가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팔로(follow·구독)하다가 취소하는 행위다. 이승연이 평소 최수종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하고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언팔한 상태임을 누군가 지적한 것. 이승연은 최수종과 1997년 드라마 '첫사랑'에서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다. 언팔한 사실을 몰랐던 이승연은 "제가 수종 오빠를 언팔했다고요? 잘못 눌렀나봐요. 오해하신 거예요"라고 해명했다. 곧바로 최수종을 다시 팔로하고 인증한 사진까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SNS 사용자들이 '언팔'에 떨고 있다. 언팔이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뭔팔?'이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SNS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헤비 유저(열성적 사용자)들은 요즘 누군가 자신을 언팔하거나, 누군가를 언팔했다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노심초사한다. 일방적으로 지인과 SNS 관계를 끊을 경우 '절교라도 한 거냐' '다신 안 볼 거냐' 등 추측성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 누구를 언팔했는지가 실시간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 언팔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먹잇감이 된다.
유명인은 더더욱 그렇다. 축구 대표팀 주축인 김민재와 손흥민 사이에 벌어진 '언팔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 지난달 28일 우루과이와 평가전에서 패한 뒤 김민재가 대표팀에 임하는 자세를 놓고 상반된 글을 올린 손흥민의 인스타그램 팔로를 취소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일부 축구 팬이 실시간으로 찾아냈고, '대표팀 불화'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놀란 김민재가 SNS에 사과문을 올리고 손흥민을 다시 팔로하면서 상황은 종료되는 듯했다. 하지만 김민재와 동갑내기 선수 3명이 대표팀에서 손흥민을 배척하는 파벌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진 뒤였다. 김민재의 언팔 자체는 개인적인 결정이었지만, '손흥민을 무시했다'는 논란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자칫 대표팀 와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진 것. 한국 사회는 왜 언팔에 집착하는 걸까.
◇언팔=절교?
언팔 기능은 원래 SNS 피로감을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정보의 홍수 속에 보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SNS 게시물이 더 이상 뜨지 않도록 할 수 있기 때문. SNS에서 특정 상대를 팔로하면 그가 새 글을 올릴 때마다 푸시(알림)를 받는다. 반대로 팔로를 그만두는 '언팔'을 하면 상대 계정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의 소식을 보지 않아도 된다. 언팔을 택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누군가의 게시물에 호기심을 느껴 팔로했다가 싫증을 느껴서거나, 오프라인에서 사이가 멀어진 사람의 피드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거나. 이유야 어찌됐든 누군가의 근황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의사 표시가 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를 관계 단절로 단정해버리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유명 연예인·인플루언서들이 누군가의 SNS 계정을 언팔하면 네티즌 수사대가 이를 포착하고, 언론에선 '○○○ 결별'류의 기사를 쏟아내는 식이다.
가까운 지인 간 언팔은 사회적 자살 행위가 될 수 있다. 김민재의 손흥민 언팔을 두고 "앞으로 국가대표 안 할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언팔을 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돌아오는 결과는 가혹하다. 서울 어느 사립대에 다니는 허윤경씨는 "작년에 같은 과 남자 선배와 두 달 사귀면서 남친 주변 선배들과 맞팔을 했는데 헤어진 후에도 선배들의 계정으로 전 남친 사진이 자꾸 떠서 며칠 고민한 끝에 SNS 계정을 언팔했다"며 "언팔했다고 당사자들에게 알리는 것도 이상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가정 교육 못 받은 거냐'는 말을 들었고 결국 과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5년 차 직장인 강세원씨는 "지난달 결혼한 뒤 아내에게 오해받기 싫어 여자 후배 계정을 모두 언팔했는데 회사 사람들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수군거려 당황했다"고 했다.
언팔을 바라보는 자세는 세대별로 다르다. 2030처럼 SNS 사용 빈도가 높고, SNS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익숙한 세대일수록 타인의 언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SNS 사용이 적은 기성세대에게 팔로는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관심 분야 근황을 확인하는 '구독'의 목적에 가깝다. 언팔을 당해도 상대적으로 덜 아파한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대면으로 만나면 말 사이 간격을 얼마나 길게 두고, 어떤 눈빛으로 상대를 보는지 등 다양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SNS는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언팔을 당한 사람은 여러 해석과 추측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Z세대는 SNS에서 자신의 모습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누군가 언팔을 하면 곧 자신을 부정하고 무시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인의 'SNS 팔로 품앗이'
'언팔'이 아직까지 해외에서 논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유독 한국 사회에서 언팔에 심각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한 것. 주변 관계를 중요시하고 남에게 인정받는 걸 강하게 추구하는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은영 서강대 교수(지식융합미디어학부)는 "트위터는 뉴스,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맞팔을 할 필요가 없는데 한국에서는 맞팔 비율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게 나온다"며 "이는 '내가 팔로해줬으니 너도 해줘야 인지상정'이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 때문"이라고 했다. SNS 팔로어의 숫자가 사회적 위상 혹은 인기를 나타내는 척도로 받아들여지면서 서로 계정을 구독해주는 이른바 '팔로 품앗이'를 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팔로 품앗이'로 맺어진 관계는 쉽게 깨지곤 한다. 맞팔을 했다가 바로 팔로를 취소하기 때문이다. 타인은 나를 많이 따르더라도 나는 남을 팔로하지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엔 내가 팔로하는 상대 중 나를 팔로하지 않는 사용자를 추려 알려주는 앱도 국내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언팔 관련 논란을 피하고자 아예 아무도 팔로하지 않으려는 사용자도 적지 않다. 아이돌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권지용)을 시작으로 유명 연예인들 사이에선 자신이 팔로하는 사람이 '제로(0)'인 경우가 늘고 있다.
◇SNS 하듯 인간 관계 끊는 사람들
SNS에서는 팔로 클릭 한 번이면 1000명, 3000명 대기업 직원 숫자만큼의 친구를 갖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어도 모든 사람과 높은 친밀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가 주장한 '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한 사람이 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최대 수는 150명 안팎이다. 하루 종일 SNS에 매달려도 수백, 수천명의 팔로어와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는 불가능한 것. 이 때문에 가지치기하듯 언팔하는 것은 SNS 규모가 커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하지만 "SNS 하듯 실제 인간 관계도 쉽게 단절하는 풍조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사람 관계는 구독, 언팔하듯 간단하게 정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한 앨릭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처럼 SNS를 아예 끊는 게 현명할까. 전문가들은 게임 중독 청소년들에게 '게임 하지 마'라고 해봤자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처럼 SNS를 무조건 나쁘게 몰아가서 사용을 막는 것 또한 올바른 문화 정착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다. 정일권 광운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생활의 구분이 명확한 기성세대는 SNS에서 갈등이 생겨도 따로 만나 오해를 푸는 데 익숙하지만 온라인 세상을 더 많이 접하며 자란 세대는 그런 노력이 미흡한 편"이라며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들에게 SNS가 갖는 한계를 이해시키고 오프라인 생활과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