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폴 안내
헤이폴의 새로운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전합니다.
서비스에 대해, 사용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1:1문의를 이용해주세요.

[경제/사회] 공교육 실패·反지성주의… '심심한 사과' 논란이 드러낸 한국 사회 민낯 (조선일보)

2022.09.05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10~60대 1237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한자와 한자어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10대와 20~30대에서는 각각 20%, 16%를 차지했지만, 40대 이상에서는 7%에 그쳤다. 한자 교육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항목엔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답변이 많았지만 10~30대보다 40~60대에서 동의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번번이 반복된 한자어 논란

촌극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가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쓴 사과 안내문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이다. 매우 깊고 간절하게 사과한다는 뜻의 '심심(甚深)한 사과'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하는 사과로 해석해 카페 측을 비난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론은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모를 수 있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각에선 "'진심 어린 사과'나 '깊은 사과' 등 다른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써야 하느냐"는 반발도 나왔다.


이제는 '사태’로 불릴 만큼 '한자어 논쟁'은 갈수록 뜨거워지는 양상. 전문가들은 "단순한 무지와 문해력 저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를 가져온 공교육 시스템의 실패, 나아가 한자어와 외래어·신조어를 둘러싼 세대 간 소통 단절, 점점 더 득세하는 '반(反)지성주의'가 응축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비비테




◇"학생 문해력 저하는 국가적 문제"

젊은 층의 문해력 저하에 대해 <아무튼, 주말>이 만난 전국 각지의 초·중등 교사들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심심한 사과' 논란에 대해 "이런 일이 갈수록 빈발할 것"이라며 "지금의 문해력 저하는 국가적 문제로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과 어휘력 수준은 '심심한 사과'의 수준보다 더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잘못 알거나 '고지식하다'는 '고(高)지식하다'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웃지 못할 일화에 대해 전북의 한 초등교사 A씨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상이나 그래픽을 보여줘도 영상이나 그래픽에 담긴 텍스트는 아예 보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교사 B씨는 "국어 시간에는 글자를 읽어도 내용이나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수학 시간에는 단순 연산 문제는 풀지만 주관식 문제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겹받침을 헷갈리거나 일상적인 한자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의 한 중등교사는 "중1 학생이 '사교육'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시험 도중에 문제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질문하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했다.


교사들이 더 걱정하는 건 문해력 떨어지는 학생들이 대부분 가구 소득이 낮고 농어촌 지역에 사는 경우라는 점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아이들 문해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것. 경기 용인 보라초 조재범 교사는 "서울 강남이나 분당 등 소득이 높은 가정의 아이들은 사교육을 통해 한자나 한자어, 문해력을 보충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여러 지역을 돌아보니 가구 소득이 낮고 부모가 생업에 바빠 공교육에 많이 의존하고 공적 돌봄을 많이 받는 학생일수록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공교육이 기초 학력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심각성을 학부모들이 모른다는 것 역시 문제다. 조 교사는 "받아쓰기, 일기, 독후감도 의무적으로 할 수 없고 한자 교육은 아예 없는 실정"이라며 "초등학교에서 평가나 시험을 일절 하지 않으니 아이들 수준을 가늠할 데이터가 없다. 그러니 부모들도 심각성을 체감할 지표가 없다"고 말했다.


◇ "문해력 저하, 특정 세대의 문제 아냐"

젊은 세대만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1970년대 한글 전용 정책이 시행되면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한자와 한자어가 생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10~60대 1237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한자와 한자어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10대와 20~30대에서는 각각 20%, 16%를 차지했지만, 40대 이상에서는 7%에 그쳤다. 한자 교육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항목엔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답변이 많았지만 10~30대보다 40~60대에서 동의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일방적으로 훈계할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자나 한자어를 잘 모르는 기성세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이명학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현 중동고 교장)가 서울에 거주하는 30~80대 부모 427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7.8%가 자녀의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한자를 모르는 기성세대가 더 많아졌을 것"이라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선 신조어와 각종 트렌드 용어에 둔감한 기성세대 역시 문해력이 낮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틸리언 프로'의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문해력이 저하된 가장 큰 원인에 대해 '새로운 문물과 어휘를 습득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크다'는 답변이 40대 이상은 15~21%인 반면, 10대와 20~30대에서 24~27%로 더 많았다. 교사 A씨는 "책과 인쇄물, 한자어 등이 중심인 기성세대의 문해력과 달리 청년층과 학생들은 디지털 문해력이 중요한 사회에 산다"며 "지금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필요한 문해력은 기성세대에게 요구된 문해력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름'이 무기가 되는 반지성주의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한자어 논란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건 자신의 '무지(無知)'를 상대를 공격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철학자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이른바 '명징·직조' 사태부터 이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명징'하게 '직조'해낸 작품이라는 한 줄 평을 쓴 것에 대해 "굳이 어려운 말을 쓰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2020년에는 광복절을 낀 3일 연휴를 '사흘간 연휴'라고 표현한 언론 보도에 대해 사흘을 '4일'로 잘못 알고 있던 네티즌들이 "기레기가 오보를 했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일도 있었다.


노 위원은 "자신이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다면 이를 인정하고 배우려 해야하는데 도리어 '왜 굳이 그런 어려운 말을 쓰느냐'며 타인을 공격하는 집단적 행동이 늘고 있다"며 "다수가 '내가 잘 모르면서도 당당하게 화낼 권리'를 내세우면, 이는 대중 독재와 다름없게 된다"고 했다. 구정우 교수는 "젊은 세대가 '왜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쓰느냐'고 반발하는 것과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왜 굳이 복잡하고 생소한 신조어나 외래어를 쓰느냐'며 배우길 거부하는 것 모두 반지성적"이라며 "한자어와 신조어, 외래어를 서로 배우고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사회도 성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자어 풀어서 가르쳐야"

그럼 학생들에게 부족한 한자어와 문해력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당장 대통령이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하자 교육부는 2024년부터 초등학교의 국어 시수를 448시간에서 482시간으로 늘려 문해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교육과정 개편 시안을 내놨다.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다"며 "특히 한자 교육과 국어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틸리언 프로 설문조사에서도 10대의 69%, 20~30대의 63%가 한자 교육 강화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명학 중동고 교장은 "단순히 독서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어휘력을 제대로 향상시킬 수 없다"며 "교과서나 책,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한자어를 풀어서 알려주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자문이나 기본 한자 1800자를 가르치는 데 집착하지 말고 한글을 잘 알기 위한 도구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조재범 교사도 "어휘를 가르치기 위한 시간을 늘리고 국어 교육 안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사교육 우려에 대해 이들은 "섣부른 짐작"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명학 교장은 "지금처럼 공교육이 한문 교육을 방치하니 도리어 학습지 등 사교육으로 한문 교육을 채우려는 수요가 커졌다"고 했다.



조선일보 배준용 기자

  • P

    • 님 질문

    * 최소 개에서 최대 개를 선택해 주세요.

    * 최소 에서 최대 사이의 값을 입력해 주세요.

    * 최소 에서 최대 개의 순위를 선택해 주세요.

    이 투표는 모바일 앱을 다운로드하신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투표입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지금 바로 다운로드 받아주세요!

    본 문항은 상세결과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성별

    연령별

  • 4
    slider 결과
    장비, 시설 및 인원 수가 많은 것
    합계 100
    전혀 동의하지 않음 보통 매우 동의함
    온라인 쇼핑은 물건을 사는 것 이외에 다른 즐거움을 준다